{{| 키가 작고 눈이 맑았던 찰스 램(Charles Lamb, 1775-1834). 그는 자기 학교, 자기 회사, 극장, 배우들, 거지들, 뒷골목 술집 등 일상의 작은 얘기들을 끝없는 로맨스로 엮은 '엘리아 수필'로 사랑받는 영국 수필가입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1792년부터 33년 동안 동인도(東印度) 회사의 회계사로 일했습니다. 매일 아침 여덟 시에 출근해서 다섯 시까지 줄곧 일을 하고, 밤시간을 이용해 글을 썼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쓸 시간이 부족했던 그는 늘 자기 마음대로 읽고 쓸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 생겨나기를 간절히 희망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1825년 그가 정년 퇴직을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이제 많은 시간 얻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이제는 밤에만 쓰던 작품을 낮에도 쓰게 되셨으니 작품이 더욱 빛이 나겠지요." "햇빛을 보고 쓰는 글이니 별빛만 보고 쓴 글보다 더 빛이 나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마지막 출근한 날, 찰스 램의 평소 소원을 알고 있던 여직원이 진심으로 축하하자, 찰스 램도 활짝 웃으며 유쾌하게 대답했습니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찰스 램은 웃는 얼굴로 중얼거렸습니다. "아아, 이렇게 자유로운 몸이 되기를 얼마나 학수고대했던가?" 그러나 3년 후 찰스 램은 자기의 정년퇴직을 축하해주던 여직원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바 빠서 글 쓸 새가 없다는 사람은 시간이 있어도 글을 쓰지 못하는군요. '''할 일없이 빈둥대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자신을 학대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오.''' 나는 결국 그 많은 시간 동안 아무 것도 하는 일없이 그냥 시간만 축을 내고 있소. '''좋은 생각도 바쁜 가운데서 떠오른다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소.''' 아가씨는 부디 내 말을 가슴에 깊이 새겨두고 언제나 바쁘고 보람이 있는 나날을 꾸며나가기 바라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삽니다. "나는 지금보다 미래에 많은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시간은 저축할 수 있을 것이다. |}} 자신을 학대하는 병, 공부 하지 않으며, 공부해야겠다 는 걸로 강박관념 갇는것, 모두 건강한 삶을 해치는 병이다. {{| 훌륭한 작업이 나오는 환경에 대한 흥미있는 경험담들, 아리송하고 역설적인, 그 알수 없는 양상들. (번역: 이광근) Donald E. Knuth 내 인생에서 제일 창의적이었던 일들을 꼽으려고 회고해 보면, 그것들이 모두 어느 한 시절, 가장 많은 제약조건과 잡무로 치이고 있었던 시기에 일어났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예를 들어 1967년이 되겠는데, 그 해는 내 인생에서 가장 정신없던 시절이었지만 동시에 내 연구중에서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많은 결과들이 샘솟았던 행운의 해이기도 하다. 속성 문법 (attribute grammar), 크누스-벤딕스 완성 (Knuth-bendix completion), LL(k)파싱 (LL(k) parsing) 등이 모두 그 해에 나온 아이디어들이다. 사실 그 해에 나는 연구할 시간이 없었다. 쓰고있던 책(The Art of Computer Programming)이 곧 출판을 준비하고 있었고, 태어난 애기 둘을 아내와 함께 돌봐야 했고, 잠깐 입원까지 하기도 했었고, Caltech에서의 강의 이외에 외국의 다섯 나라에서 다섯가지 다른 주제로 강연하러 다니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연구 시간을 쪼개내려고 노력했다. 한번은, 학회에 참가해서는 대부분의 논문발표 세션을 빼먹고 해변에 가앉아서 내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종종 의문이인다, 내가 그 해에 보다 더 안정적이었다면 어땠을까, 내 연구가 과연 더 생산적이었을까 덜 생산적이었을까? 이러한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연구소를 제일 잘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은, 연구진들에게 좋은 연구실말고 다락방같은 형편없는 곳에서 지내도록 하고, 심하게는 연구와 관련없는 일들까지 시키는 것이다. 이상한 방식이긴 하겠지만, 그러한 제약조건을 만들어 놓으면 최대의 창의력이 솟아나는 것이 사실인것 같다. If I look back at my own life and try to pick out the parts that were most creative, I can't help but notice that they occurred when I was forced to work under the toughest constraints. For example, 1967 was surely the most hectic year of my life, but that was the year when I was lucky enough to come up with several ideas that are now considered important, like "attribute grammar" and "Knuth-Bendix completion" and "LL(k) parsing." I actually had no time to do research that year, because The Art of Computer Programming was nearing publication, and my wife and I had two babies to take care of, and I needed to be hospitalized briefly, and I gave lectures in five countries on five different subjects, in addition to the classes I was teaching at Caltech. Yet I stole time to look at new things whenever I could; for example, at one conference I remember that I skipped most of the lectures so that I could sit on the beach and do research. I often wonder whether I would have been more productive or less productive if my life had been more stable that year. My experiences suggest that the optimum way to run a research think tank would be to take people's nice offices away from them and to make them live in garrets, and even to insist that they do non-researchy things. That's a strange way to run a research center, but it might well be true that the imposition of such constraints would bring out maximum creativity. Donald E. Knuth, [Things A Computer Scientist Rarely Talks About], CSLI Publications, 2001, pp.82-83. 최상급의 인재들이 모인 연구소일 때, 라는 가정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제약조건과 잡무"라고 번역해보았지만, (크)누스 선생이 얘기하시는 "constraints"라는 것이 급수가 꽤 높은 잡무가 아닐까 혹시? Frederick P. Brooks, Jr. 다른 예술이나 공예 분야를 살펴봐도 수련/절제/통제/수양/형식 이라는 것이 좋은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 예술가의 일갈이 있지않던가, "형식이 자유를 가져오리라." 건축에서 최악의 건물들은 그 이유가 모두 그 목적에 맞지않게 풍성한 예산때문이었다. 바하의 경우 매주 제한된 양식의 칸타타를 작곡해야 한다는 제약이 그의 창의적인 작업을 가능하게 했으면 했지 억누른 것 같지는 않다. 확신하건데 IBM의 [Stretch 컴퓨터]의 경우 좀더 제약이 많았었다면 더 훌륭한 제품이 되었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로, [System/360 Model 75]의 훌륭한 면모는 [System/360 Model 30]의 예산때문에 발생한 제약조건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으로 난 본다. 비슷한 경우로 내가 겪기에, 컴퓨터시스템을 구현하는 팀의 창의성이 오히려 증대되는 경우는, 디자인팀과 구현팀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어서 구현팀은 디자인팀에게서부터 디자인을 전달받는 조직구조에서 나타났다. 이렇게되면 구현팀은 누구도 맞닥뜨리지 않았던 문제들에 곧바로 집중할 수 있고, 그러면서 창의적인 발명들이 물흐르듯 흘러나오게된다. 그런데, 구현팀이 자유롭게 디자인까지도 하는 조직이 되버리면, 대부분의 궁리와 논쟁은 시스템의 디자인 사항들에 대해 쏟게되고 막상 구현 자체는 소홀히 아무렇게나 취급되게된다. There are many examples from other arts and crafts that lead one to believe that discipline is good for art. Indeed, an artist's aphorism asserts, "Form is liberating." The worst buildings are those whose budget was too great for the purposes to be served. Bach's creative output hardly seems to have been squelched by the necessity of producing a limited-form cantata each week. I am sure that the Stretch computer would have had a better architecture had it been more tightly constrained; the constraints imposed by the System/360 Model 30's budeget were in my opinion entirely beneficial for the Model 75's architecture. Similarly, I observe that the external provision of an architecture enhances, not cramps, the creative style of an implementing group. They focus at once on the part of the problem no one has addressed, and inventions begin to flow. In an unconstrained implementing group, most thought and debate goes into architectural decisions, and implementation proper gets short shrift. Frederick P. Brooks, Jr. [ The Mythical Man-Month: Essays on Software Engineering, anniversary edition], Addison Wesley, 1995, "Chapter 4: Aristocracy, Democracy, and System Design," pp.46-47. 김 용옥 천하에 쫓기지 않고 나오는 명문(名文)이라고는 없다. Richard P. Feynman 내가 1940년대에 프린스턴대학에 다닐때 프린스턴 고등과학원(Institute of Advanced Study)에 있던 대단한 두뇌들에게 일어난 일을 관찰할 수 있었다. 고등과학원의 과학자들은 엄청난 두뇌 때문에 특별히 스카웃되어 최대한 자유롭게 연구하고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 숲속의 멋진 집에 살면서 오직 생각하고 연구만해도 되는 꿈같은 환경, 강의의 의무도 없이, 어떠한 의무조항도 아무것이 없는. 이 딱한 또라이들이 앉아서 명료한 이치들을 모두 그들 스스로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었단 말이다. 그러다보니 이상하게도 그들에게선 한동안 아무 아이디어도 나오지 않았다: 뭔가를 할 수 있는 모든 기회가 주어졌는데 어떤 연구아이디어도 나오지 않았단 말이다. 내가 믿기에 이러한 상황에서는 모종의 죄의식 혹은 우울감이 스멀스멀 맘속에 일어나게 되고, 혹시 연구성과가 없으면 어떻게하나 걱정하게 되 있다. 그리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직도 아무 아이디어도 나오지 않고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진짜 일과 진짜 도전이 충분히 없기 때문이다: 정말로 일을 하는 사람과 접촉하는 일도 없고, 학생들의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궁리할 필요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When I was at Princeton in the 1940s I could see what happened to those great minds at the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who had been specially selected for their tremendous brains and were now given this opportunity to sit in this lovely house by the woods there, with no classes to teach, with no obligations whatsoever. These poor bastards could now sit and think clearly all by themseleves, OK? So they don't get an idea for a while: They have every opportunity to do something, and they're not getting any ideas. I believe that in a situation like this a kind of guilt or deprerssion worms inside of you, and you begin to worry about not getting any ideas. And nothing happens. Still no ideas come. Nothing happens because there's not enough real activity and challenge: You're not in contact with the experimental guys. You don't have to think how to answer questions from the students. Nothing! Richard P. Feynman, [Surely You're Joking, Mr. Feynman!], 1985, "Part 4: From Cornell to Caltech, with a touch of Brazil. The Dignified Professor," pp.165. Umberto Eco 세계 창조의 작업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제약 조건을 만들어 심어 둘 필요가 있다. 시에서 이러한 제약 조건은 음률, 각운, 율동의 형태로 시 속에 자리를 잡는다. 이것이 이른바 "듣는 귀를 위한 운문(verse according to ears)"이라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창작 노트],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003년, pp.44. Jean Grenier 사회 구조 그 자체, 카스트의 구분, 복잡한 의식들, 사회에 의하여 개인을, 종교에 의하여 인간을 짓누르는 모든 것, [중략] 그 모든 것도 정신으로 하여금 그의 가장 귀중한 인연들로부터 해방되게 하고, 정신이 이성의 밖으로 도약하도록 도와주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하나의 <장치>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속에 열광적인 공감이 솟아오른다. [중략] 니체는 말한다. <쇠사슬을 차고 춤을 추도다.> 이토록 강력한 구속은 동시에 그에 버금가는 해방을 낳는다는 것이 바로 그 구속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장 그르니에, [섬], 김화영 옮김, 민음사, 1997년, pp.141-142. |}} --http://ropas.snu.ac.kr/~kwang/quote/research-env.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