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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버섯 농활을 다녀오구나서

                   					||||반디불이 농활단  || 박동희||

농활! 그 멋진 공동체 생활의 스타트

농활이 시작 되기 하루전에 미리 가게 되었다. 미리 가서 준비도 하고 마을분들게 인사도 드리고..청소도 해놓구…후후.. 그래서 마을분들께서 밥을 해주셔서 그거 먹고 첫날은 이럭저럭..감자좀 줍고 보내었다. 다음날부터 농활이 시작이다….! 오후쯤 되어서 나머지 일행들이 왔다. 나는 하루 지냈던 터라 이것저것 얘기 해드리고, 나의 공동체 농활의 막이 시작 한 것이다. 농활 가서 힘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농촌 봉사활동을 사전에 알고 갔으며 나 자신적인 동의에 의해 간 농활이라 더욱더 빛나지 않았나 싶다. 학교생활이나 개인적인 취미 활동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여러 가지를 배울수 있는 계기를 찾았던 중에 2학생회관 학우들의 농활 소식이 반가 웠다. 농활 속에서도 각 개인의 생각을 앗 수 있엇고 듣지는 못해도 피흘리는 현장에서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번 농활사전 교육때 들엇던 내용들이 더욱 더 빛났다. 현장 작업을 마치고 밤이 되면 둘러앉아서 토론도 해보고, 애기도 하고 더욱 재밌는 농활을 이루기 위해 노래도 배우고 춤도 배우고. 어머님, 아버님과 얘기..그리고 마지막 마을 축제.. 처음에 무주에 도착해서 반디불을 난생 처음 봤었던 때 보다 더 찡하다.

생활의 노고속에 스며든 교훈들

농촌현장에서 아버님 어머님들의 노고와 그 EKa속에 섞인 정말 인생에 몇안되는 가버치진 교훈을 배우고 왔다. 대학 생활하면서 중심에 있지 못하고 겉도는 생활을 하는 나로선 여간 반가운 만남이 아니었나 싶다. 농활 하면서 몇 안되는 일을 했지만 기억 남는 것은 비닐 하우스 철거 하던 날이다. 그날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의 피땀 어린 우리들의 사랑에 대해 느꼇던 날이다. 어느때와 같이 봉사 주체님의 활동 배분에 따라서 오늘은 비닐 하우스 철거를 하게 되었다. 비닐하우스가 작년 겨울에 싸인 눈 때문에 폭삭 주저 앉은 것이다. 마땅히 그일을 할 사람이 부족한터라 비닐하우스집 아버님이 그일을 미뤄왓는데 우리가 와서 참 좋아 하셨다. 일 하는 동안 아버님은 내가 힘쎄다고 일 잘한다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아버님 가슴 섭섭한 구석을 느꼇다. 아버님 집안 얘기도 하시고, 자녀 얘기 하는속에 마치 남의 집의 얘기가 아닌 우리집 처럼 느껴졌다. 후후…새까 맣게 튼 손은..마치 우리 아버지와 같으셨고, 아들에 대한 섭섭함을 말하실 때, 우리 친 아버지의 말을 그 대로 옮기시는 듯 하였다. 자녀 교육 시키실려고 힘든 버섯 농사 지시고, 자녀들 출세 해서 도외지로 나가셔도 묵묵히 지키시는 부모내들의 마음을 그 자녀들은 알기나 ..하는지 책망이 들었다. 너무 동질화된 우리내 아버지들..그 노고속에서 ..평소에는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사실을 알아버린게 나에게는 좀더 주변을 생각 하게 하는 고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내 구석진곳에서 항상 곪았던 여드름이 터지는 듯 했다.

감동의 공동체

항상 공동체안에서 활동하면서 왜? 우리 공동체는 원활하게 이끌어지지 않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섰다. 음 무엇이 모자랄까? 대화?..아니면 리더?..전부 중요한 요소 이지만 .농활와서 그 허전 함을 알 수 있었다. 바로 감동이다. 감동의 공동체! 공동체 성원들 사이의 신뢰감을 높여주고 항상 감동에 빠져들게 하는 공동체.. 모든요소를 가추었던 공동체가 농활 공동체 였다. 현장에서 작업을 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오면, 기분 좋을수 도 있지만 유쾌하지 못한 날고 있다. 그럴때면 주위에서 힘을 돋구워 주는 이벤트를 열어주고, 기쁘게 해주고 여간 힘빠질 틈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가만 주위에서 보면 잘 돌아가는 공동체에는 항상 감동이라는 두글자가 중심에 있었다. 이 얼마나 즐거운 발견 아닌가. 정말 즐겁다..감동!감동! 나에게 감동을 맛보게 해주었다 우리 모듬의 성원들에게 감사 하는 바이다.

반딧불이 농활대! 앞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범으로 생각 하는 그러한 모듬 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