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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라에서 만화가로 살아 간다는것'

부키안으로부터…

나는 만화가이다.

만화가는 프리랜서라는 점과 예술창작자라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그리고 그 두 가지 특징은 매우 매력적인 특징들이다. 가령 남들이 억지로 일어나 온갖 부산을 떨며 집을 뛰쳐나가 스모그와 사람, 운송수단이 뒤엉킨 도로에서 수명을 갉아먹고 있는 동안 만화가는 그저 자고 있을 뿐이다. 자고싶은 만큼 자고 슬그머니 일어나면 어느새 점심 시간이거나 오후이다. 볼일이 있다면 천천히 준비해서 나갈 일이다. 멍청이를 제외하면 오전에 전화를 걸거나 약속을 잡자고 만화가에게 조르는 사람은 없다.

만화가는 언제나 한산할 때 다닌다. 도로도 한산하고 식당은 할인되는 시간대이고 기다릴 이유도 없다. 어느날 직장인과 함께 식당에 가거나 지하철을 타는 날이면 만화가는 놀라곤 한다. “이상하게 사람이 많군”, 하면서…… 여유' 그것은 프리랜서의 특권이다. 여유 있게 움직이고 여유 있게 일한다. 사람들에게 치일 일도 없고 도심에서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 만화가는 한적한 장소에 자리를 잡는다. “차라리 어디 조용한 나라로 이사를 갈까?” 하고 생각해본다. 어차피 원고는 인터넷으로 보내고 연락은 전화와 메일로 한다. 마감이 없는 날이면 영화를 보거나 직접 갈은 원두로 우려낸 뜨거운 커피와 함께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책을 읽다 졸리면 그냥 자면 될 것이다. 걱정따위는 없다. 그대로 자자. 잠이 깨면 식은 커피를 한잔 마시고 다시 읽은 부분을 확인한다. 책이 재미없으면 스토리를 구상해본다. 이도 저도 싫으면 우체부가 배달해준 펜레터들을 읽어본다. 여유, 낭만, 한적함과 고독을 사랑하고 책을 벗하며 살아가는 인생. '만화가가 되면 이렇게 살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데뷔하고 난 뒤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만화가에게 삶을 통해 가지게 되는 것은 여유와 낭만이 아니라 치열한 현실과 고통스럽고 대가 없는 노동이었다. 청소년 보호법은 만화가들에게 치열한 투쟁을 선사했지만 그 투쟁은 엄청나게 많은 투쟁의 일부였을 뿐이었다. 만화가들은 고통스러웠고 특히 1997년 이후 만화계는 빠르고 저항하기 힘든 파멸들을 겪었다. 데뷔 이후 10년 동안 많은 싸움을 해야만 했다. 출판 환경은 좋지가 못했다. 대다수의 편집장들과 편집기자들은 만화가(특히 신인)에게 가혹하고 잔인한 존재였다. 출판사는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거나 원고를 되돌려주지 않거나 마구 다뤄서 훼손하거나 심지어 분실하기 일쑤였으며 저작인격권이란 것은 만화가에게는 없는 것처럼 행동하곤 했다. 상업성에 대한 요구는 예술가 자신을 담아야 한다는 예술의 근본적인 요구 사항을 묵살하도록 강요하였다. 책이 한 권 더 팔리고 순위를 한 등수 올리기 위해서는 바보처럼 그리거나 바보가 되어 그려야만 했다. 책의 부수를 속이고 만화를 마음대로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는 것을 당연하게 만들려고 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들과 싸우고 저항하는 일은 많은 고통이 따랐고 힘겨운 결과들을 가져오곤 했다. YWCA, 제도언론, 간행물윤리위원회, 정보통신위원회, 청소년보호위원회 등등은 때론 힘을 합쳐. 때론 돌아가며, 때론 바톤 터치를 하며 만화가와 만화를 매도하고 공격하고 파괴하고, 범죄자 취급하기도 하며 결론적으로 처리되어야 할 쓰레기로 간주했다. 여기에 맞서 예술의 정당성과 표현의 자유와 기본적인 권리와 범죄의 동기에 대한 사회학적 올바름을 위해 싸우는 일은 힘겨운 일이었다. 시장의 문제도 치열했다. 대여점은 태생적으로 만화의 발전을 파괴하는 존재였으므로 초창기부터 이를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한국에서 만화는 당연히 빌려 보는 것'으로 최소한 다수의 일반인들은 믿게 되어버렸다. 인터넷의 보급은 더 끔찍해서 와레즈사이트들은 저작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만화가가 생계를 위해 받는 몇 푼의 돈이 착취이자 독점이라고 주장하였다. 출판사는 인터넷의 전송권이 자신들의 소유라고 주장하면서 그래야 한다'고 주장했고 인터넷 회사들은 전송권에 대한 장기적이고도 광범위한 권리를 독점적으로 행사하는데 만화가들에게는 아무런 대가도 없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만화가가 저작권자로서 권리를 가지는 것은 역시 독점이며 횡포라는 것이다. 대다수의 만화가들이 옥탑방과 지하실을 전전하지만 저작권 문제에 있어서만은 갑자기 빌 게이츠 취급을 당하는 일은 기이할 정도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오전에 전화하는 멍청이들은 왜 이렇게 많은 것인지!!! 착취, 가난, 대가 없고 휴식도 없는 과중한 노동, 실력 없고 근성도 없고 인성도 없는 어시스턴트들, 언론과 공권력의 주기적인 폭력, 어느새 슬그머니 사라지는 권리들, 미래가 없는 삶, 오전에 전화하는 멍청이들은 프리랜서이자 예술가인 만화가의 특징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들에 맞서 가공할 만큼 강력한 적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 만화가의 특징이었다. 정말 재미없는 인생이다.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데뷔 전 꿈꾸는 여유와 안락한 삶은 없는 것일까? 혹은 상업적 성공을 거둔 소수만의 전유물인 걸까?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고 기대와도 다르기는 하지만 이런 치열한 상황에서도 만화가라는 삶은 싫지가 않다. 아니다. 싫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사랑스럽다. 너무 큰 욕심을 부리고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자신이 왜 만화가가 되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잊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만화를 사랑하고 만화 그리기를 사랑한다는 이유이다. 만화가는 프리랜서이고 예술창작자이다. 오전에 전화하는 멍청이들은 메시지 버튼을 눌러놓고 휴대폰을 꺼버리거나 멀리 던져놓으면 해결된다. 아침 출근시간에 전국민이 바쁜 그 시간에 만화책을 보다 슬그머니 든 단잠을 자고 나는 오후 몇 시쯤에 여유 있게 일어난다. 30분만 더 자고싶은 마음을 참아야 하는 고통스런 직장인들을 떠올리며 30분을 더 자버린 다음 말이다. 만화가는 며칠씩 잠을 못자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하루에 과하지 않은 분량만큼만 일하기 때문에 절대 그런 일은 없다. 어떤 경우에도 숙면이다. 요리가 취미인 나는 실력도 근성도 인성도 없지만 그대로 남들보다는 나은' 제자들과 먹을 식사준비를 한다. 밥을 먹고 일을 조금 하고 나면 만화가가 너무나 사랑하는 어둠이 세상을 찾아오고 만화가의 화실만이 빛을 밝힌다. 직접 갈은 원두를 모카포트에 넣어 에스프레소를 우려낸다. 사치스럽지는 않지만 여유가 살그머니 나를 찾아온다. 맛있는 커피를 사먹을 수도 있지만 나는 커피란 마시는 것만큼이나 우려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여기며 즐기는 편이다.

커피를 홀짝거리며 내가 얼마나 이 일을 사랑하는지 생각해본다. 나와 내 작품을 사랑하는 팬들도 생각해본다. 내가 낸 책들이 꽂힌 책꽂이를 살펴본다. 역시, 치열한 만화계에서 예상치 못한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살아왔지만 이 만화계에서 얻은 즐거움은 그보다 훨씬 큰 것이 분명하다. 다른 삶을 살았고 다른 직업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기조차 하다. 만화를 그리며 사는 것 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이기에 만화가로 산다는 것에 웃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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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다닐 시절(고1쯤인가?) 나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주었던(ㅋㅋ) 다현이가 나에게 처음으로 포토샵(이미지 편집툴)을 소개해줄떄 박무직님이 그린 일러스트를 보여주었다. 아주 감동이었다. 그후로부터 다현이와 친하게(?) 지낸듯 하다.컴퓨터로 이런일을 할 수 있다니. -_-지금은 그러한 감동은 없지만..흐흐 암튼 다현아 고마워!!

그리고 박무직님은 나와 마찬가지로 [RyokoHirosue] 광팬이다 ㅋㅋ

b9_da_b9_ab_c1_f7.txt · Last modified: 2018/07/18 14:10 by 127.0.0.1